흔히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진가 이재갑은 그 순간이 인생이라고, 사진은 인생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갑. 대한민국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한국인, 혼혈아를 이야기하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6.25를 거치면서 그 결과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표출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소재로 소설가, 사진가, 미술가들이 많은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들은 분단, 혼혈아, 민족, 통일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진가 이재갑은 그 증 혼혈아라는 문제에 대해 조명한다.
그의 ‘사람’사진을 보면 한 사람의 얼굴이 프레임을 가득 채운다. 표정, 얼굴의 주름하나하나가 그 사람의 살아온 배경, 고됨, 슬픈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재갑이 담아낸 사진 속의 혼혈아들은 눈으로 우리에게 뭔가를 호소한다. 우리와는 다르게 생긴 그들의 사진 밑에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증명해주는 주민등록증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민등록증. 이 조그만 증 하나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외국인, 타국의 사람들은 갖은 고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진속의 이들은 날 때부터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다. 주민등록증은 그들이 우리와 다른 외국인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한국인이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인지시켜 준다.
이재갑 그가 처음부터 혼혈아 사진만 찍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찍고자 했고 사람을 찾아 다니다보니 우리나라에서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혼혈을 찍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그가 혼혈을 찍게 된 계기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슬럼프에 빠져서 고민하던 1992년 8월 한 TV토크쇼에서 가수 박일준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것이다.
“박일준은 어렸을 때 우유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계속해서 마시면 피부가 하얗게 된다고 믿었던 어린 마음에…….’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방청객들은 “하하하” 하며 큰소리로 웃었다.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모습들이었다.“한국사회에서 검은 피부로 살아 온 그에게는 참 가슴 아픈 나날이었을 텐데 ...”
그 뒤로부터 그는 혼혈 1세대의 삶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즉흥적일 수도, 감정적일 수 있는 그의 혼혈아와의 인연. 그는 자신의 사진은 50프로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지만 나머지 50프로는 피사체가 결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50프로를 채우기 위해 그들과 소통한다. 대구토박이 사진가인 이재갑은 일주일에 세 번 서울을 오간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그들이 먼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다. 항상 움직이고, 찾아가고, 그들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실 혼혈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짧게는 1년 길게는 14년에 걸쳐서 설득하고 결국 그들이 진정으로 원할 때 카메라 앞에 세운다. 그리고 단지 사진을 찍는 행위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한다. 그들은 이재갑에게 존재가치를 부여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는 혼혈아들을 만날 때 마다 사진을 찍는다. 같은 사람을 반복해서 찍는 이유는 사진 속에 그들이 인생을 담고 싶기 때문이다.
Another Korean 그들 역시 이 사회의구성원이다. 하지만 그들은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받고 색안경 낀 시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재갑은 1992년부터 지금까지의 작업이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쓰여 지길 소망한다.
“혼혈인들이 불쌍하고 가엽다고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은 일은 없습니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들의 삶에 대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내 평생 동안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기록이 아닌 ‘기억’을 위한 작업
사진이라는 매개는 기록을 위해 발명되었고, 그 어떤 수단들 보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사진의 본질에 대해서 기록이라고들 이야기 한다. 사실 다큐멘터리사진이라는 용어를 따로 사용하는 것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기록이라는 사진의 본질이 디지털으로 넘어갔다. 더 이상 사진이 기록이라는 것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재갑은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다. 이재갑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기록이 아닌 기억을 위한 작업을 한다. 그런 그의 작품들은 아주 스트레이트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딱 중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사진에서 느껴진다. 사람을 위한, 기억을 위한 이야기를 하는 데 중간을 지키기가 쉬운 일은 아닐지만 그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과거에 대해 매달리는 것이 현실적 문제에 대해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가가 어떠한 대상을 프레임에 담을 때는 왜 찍는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를 표현 할 수 있는 방법은 카메라를 통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들이 주관에 너무 치우지면 안 된다. 이재갑은 그 이유를 자신이 기억하는 순간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또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사진은 기록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작업에 대해 당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의 깊이에 대해
‘사랑해’라는 말에도 강약, 그 깊이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사진역시 마찬가지다. 사진이라는 것이 아주 직접적이긴 하지만 같은 대상을 찍더라도 그 의미와 그 느낌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피사체와의 소통의 정도의 차이다. 이재갑의 사진에서는 피사체들이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의 눈은 너무나 깊어서 그 사람의 마음 속 불안까지 다 비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은 유독 깊이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사진가 이재갑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뛰어난 사교성을 지닌 사람도 아니거니와 재치 있는 달변가는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자신은 사람을 무서워한다고 까지 이야기를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해주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기다린다. 깊이 있는 사진을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국 피사체가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 그때서야 그는 카메라를 꺼내든다. 모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꼬여 있는 이 세상 역시 사람에 의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재갑. 그것이 그가 각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계속 해 올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사진가는 잔인하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그 장례식장 장면을 찍고, 아프가니스탄의 굶어 죽어가는 아이의 사진을 찍고, 전쟁터에서 총받이가 되어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을 ‘잔인하다’ 라는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사진가들 역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재갑 역시 사진을 찍다보면 사진가가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하고 그로인해 헤어나오기 힘든 슬럼프에 빠진 적 도 많았다.
▲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땅의 혼혈인, 쟈아니 페루키씨(왼쪽)와 김넨시씨. 클로즈업한 얼굴 속 그들의 눈빛이 살아온 질곡을 말해준다. ⓒ2007 이재갑
"왜관에 살고 있는 커티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넨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습관처럼 카메라를 준비해서 어머님이 계시는 병원으로 향했다.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그러나 어머님이 잠들어 계신 곳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순 없었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혼자 어머님 옆을 지키고 있는 넨시의 삶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순간 내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4년 동안 무엇을 위해 사진작업을 한 것인가, 깊은 고민을 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만의 전쟁 - 혼혈인', 81쪽, 사진가 이재갑
하지만 그는 그 깊은 고민을 하게 했던 시간을 지나와서 ‘기억’이라는 것에서 답을 얻었다. 사진가가 슬프고 참담한 순간에 카메라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잔인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진가가 그 순간을 단순히 기록하기 위해서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이재갑은 그것에 가치를 느끼고 기억을 하기 위한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사진이 뭔가요?
그는 ‘사진은 삶이고 그 삶은 곧 나다’ 라고 쉽게 이야기를 해왔었다. 강의를 시작 할 때 마다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사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하는 질문을 쉽게 던졌었다. 어느 날 강의실 앞에 앉아 있는 여학생에게 여느 때와 같이 질문을 했다.
“사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그 여학생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모두가 당황했고. 그 여학생은 울면서 가슴속에 품어뒀던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친구 4명이 찍은 사진이었고 사진 옆쪽으로는 누가 지나갔는지 손목 하나가 잘려 있는 사진이었다. 그 손목의 주인공은 그 여학생의 어린 남동생이었다. 그 여학생이 친구들 끼리 사진을 찍는 데 동생이 같이 찍겠다고 칭얼거렸다. 동생에게 윽박질러서 옆으로 보냈는데 그때 동생의 손목이 찍힌 것이다. 그리고 몇 일 후 동생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그 여학생에게 남은 것은 그 남동생의 손목사진이었다. 그 여학생은 자신은 사진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사진이라는 것이 삶이다 나 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각각 그 가치와 의미가 너무나 다르구나. 그래서 그때 겁먹고 다시는 사진이 뭔지 물어보지 않는다. 하하
좋은 사진? 잘 팔리는 사진?
좋은 사진이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포커스가 잘 맞은 사진, 구도가 좋은 사진, 노출이 적절한 사진 등... 사실 좋은 사진이라는 것, 잘 팔리는 사진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할 수 밖에 없다.
먼저 좋은 사진은 사진가의 생각이 들어가 있는 사진이다. 사진을 찍어놓고 이 장면을 왜 선택했느냐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다. 여기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드러난다. 누군가가 내 사진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사진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것이 왜 소중한지, 왜 가치가 있는 지를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프로다.
둘째로 잘 팔리는 사진이라는 것은 타인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진가라면 잘 팔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사실 카메라 뒤쪽의 자리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팔자이다. 카메라의 기본 구조는 똑같다. 카메라는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과학의 소산물일 뿐이다. 카메라 뒤쪽에서 사진가로써 하찮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이재갑은 이제 카메라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라고 이야기한다. 좋고, 나쁘고 지금까지의 기준은 내가 세운 기준이 아니라 문화와 교육이 세워놓은 기준이고 나의 감성까지도 그 기준에 따라 제단 될 필요가 없다. 이제 사진가로써 좋은 사진을 위해서 ‘나’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재갑. 그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기준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조선일보와 니콘이 함께하는 토요 포토스쿨 열세번째 강좌가 10일 오후 2시 조선일보사 C스퀘어 빌딩에서 열렸다. 이번주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갑씨가 '나의삶, 나의 사진'이란 주제로 강의했다. 다음주 토요일(17일)에는 큐레이터 황사라씨가 오늘날 시도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부 VJ 민봉기 기자 bongs85@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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